
번역 by BACH2138
"저는 약 10년전에 레코드 취입하는 것을 그만두었어요. 레코딩을 그렇게 많이 즐기는 편이 아니죠; 저를 굉장히 부담스럽게 만들어서요. 라이브로 청중을 위해 연주할 때에는 무대에 오를 때까지만 신경이 쓰입니다; 하지만 일단 무대에 오르면 저는 물속의 물고기같이 느낍니다. 완벽을 위한 여분의 강조점때문에 레코딩은 짜증나죠. 그러나 저는 레코딩에 확고히 여기는 음악에 대한 관념을 남기기를 원합니다. 지금의 레퍼토리에 새로운 재료들을 추가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한 세기이상을 살아오며 사랑했던 그 음악들에 전념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도이췌 그라모폰에 의해 취급되는 세션들의 방식을 좋아합니다. 거기서 재취입을 위한 에러나 그런 이유들이 있었는데, 여기 저기 실수가 있어도 저는 외과적인 수술을 하지는 않았어요: 교정은 대등하게 조정되어야 감성적인 추진력, 직관적인 퀄리티가 유지될 것이고, 역시 그래야 아이디어, 열정, 리리시즘이 짜깁기에 방해받지 않게 되죠. 만약 어떤 것이 재취입되어야 한다면 저는 계속성을 위해서 그것의 큰 부분을 연주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바흐 무반주 파르티와 소나타는 런던에서 도이췌 그라모폰과 녹음한 것이 50년대에 녹음한 그것보다 더 우수한 것 같습니다. 이전에 연주한 것보다 현재 더 잘 연주하지 못했던 것은 제 레퍼토리에서 없습니다-그리고 오늘날의 기술적인 상황하에서 이들 작품들을 녹음할 수 있어서 저는 특히나 유쾌합니다."
바흐 솔로 작품들은[...]수년동안 밀스타인의 장기였었다.[...] 비록 바흐가 밀스타인 스스로 발견한 음악이 아니라도: "러시아에서 우리는 바흐를 위대한 작곡가로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들 중에 오직 싱글 푸가만이 우리의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가 바흐를 연주할 때에는 거의 분리된 실체로서의 베이스에 특별한 강조를 하면서, 베이스와 중간 성부를 불리하도록 강세를 줍니다."
밀스타인의 관념에 의하면, "비루투오서티"는 단순한 외관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할 정도로 뛰어난 최고의 수준"을 말한다-"어떤 종류의 실험에서도 음악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저는 "전쟁과 평화"가 비루투오소적인 작품이라 여깁니다." 그는 역시 단순한 손가락 기교로 부터도 테크닉을 구별해낸다: "테크닉이란 것은 단순히 근육적인 컨트롤이 아니라 제가 하기를 원하는 것에 대한 매개체를 조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밀스타인이 연주하는 악기는 1945년 취득한 "엑스 골드맨"이라 이전에 불리던 1716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이다. 그는 이 악기를 자신의 딸 마리아와 와이프 테레사를 경애하여 "마리아 테레사"라고 이름을 다시 붙였다.[1975년 밀스타인과의 인터뷰에서.....(Richard Freed)]
이것은 경이적인 바이얼린 연주라는... 밀스타인의 특별한 장점은 당당한 테크닉이다: 결코 단 한음도 피치나 리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그라모폰-1975)
...이것은 어떤 기준으로도 장대한 녹음이다; 70에 다다른 연주자로 볼 때 이는 기적적인 수준의 성취이다.(레코드와 레코딩-1975)
...이것은 70대 오데사 출신 바이얼리니스트 최고의 업적으로 확실히 랭크되어야 한다. DG의 관통하듯 선명하고 따스한 환경에서 완전무결하게 녹음된 그의 해석은 너무나 특별하여 이 석장의 음반은 올해의 가장 뛰어난 음반중 하나일 뿐아니라 지금까지 취입된 최고의 바흐레코딩중에 그 자리를 내어줄 가치가 있다. 첫째 밀스타인의 연주는 순전히 테크닉적인 기초위에서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때때로 이작품은 연주자가 곡을 거의 간파하지 못한 듯 울려지는 경향이 있는데, 소나타의 3개의 푸가의 대위법적인 소용돌이에서 특히 그러하다; 심지어 기껏해야 3~4개의 선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급속한 아르페지오는 갑작스레 자주 불쾌한 스크레치를 야기한다.[...]테크닉은 별론으로하고 밀스타인의 해석은 비범한 인성적인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여기서 따스할 정도로 인상적인 리딩을 찾는데 거기에는 음악이 감성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리듬감이 오리지널 무곡성을 일깨운다. 느린 악장 역시 근사할 정도로 우아하게 취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밀스타인의 페이스 감각이 있는데 이는 사려깊은 펨포의 선택으로부터 꽤나 떨어져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한 절정에서 다른 절정으로 축조되어 커져가는 샤콘느같은 악장에 영향을 주는 미묘한 레토릭에서 드러난다. 그러한 추진력은 항상 강력하고, 조형은 또한 명확한데 루바토 유사의 억양은 바흐 프레이즈의 구조를 명쾌하게 한다. 톤으로 봐도 밀스타인의 연주는 상당히 아름답다.(스테레오 리뷰-1976)
모든 프레이즈들이 의미심장하게 조형되어 있어서, 각각의 선율들이 음악적으로 생동하고 테크닉의 문제에서도 의심의 여지조차 없다.(그라모폰-1976)
이 밀스타인의 연주는 최근 몇년간 출시된 것 중에 가장 뛰어난 음반이다. 모든 프레이즈가 아름답게 짜여져 있고 몹시도 생생하다; 잘 살려진 선율감이 있고 비루투오서티의 결핍이 전혀 없는데... 밀스타인은 DG엔지니어의 뛰어난 도움을 받아 음향이 자연스럽고 살아 숨쉬는 것 같다.(펭귄 가이드-1977)
밀스타인의 연주는 권위와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성취하고 있다: 프레이징은 나긋나긋하고, 낭만적인 탐닉의 암시가 없는, 깊은 맛을 주는 연주이다. 이는 전적으로 존경할 만하며, 어떠한 종류의 주저도 없이 추천받아야 할 것이다.(그라모폰-1977)
밀스타인 바흐를 연주하다(by Tully Poter)
바흐의 무반주 바이얼린 파르티타와 소나타가 나탄 밀스타인을 수중에 가지고 있게 된 매혹을 이해하기위해서, 우리는 작품 그 자체를 고려해보아야 한다. 이들은 쾨텐 궁정에서 카펠마이스터로서의 역할에 서 있으면서 기악음악에 집중하던 때인 1721년에 씌어졌다. 다른 많은 영역에서 그랬듯이 바흐는 한 장르를 창안했던 것은 아니고 당대나 선대의 독일의 작곡가에 의해 쓰여진 솔로 바이얼린 작품위에 비약적인 개선을 가져왔다. 그는 바이얼린과 비올라연주에 능숙하여 자신의 무반주 작품안에서 추상적인 모형과 양식을 창출하였다. 거기에서 연주자는 그 자신을 거의 소통하도록 보이며, 나아가 여전히 청중을 눈부시게한다. 이것은 그 안에서 연주의 영적인 것과 비루투오소의 요소가 극히 균형을 이루어 있어 그 끝과 시작이 어디인지를 말하기 어려울 음악이다. 바흐는 단선율의 음악에 만족하지 않고 화성과 심지어 대위법에 몰입시키고 있는데 그부분 음악의 화성적인 흐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추가적인 성부를 암시한다. 이러한 대위법의 가장 놀라운 현출은 세개 소나타의 거대한 푸가들에서 나타난다.
파르티타는 일견 단순히 무곡의 모음곡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바이얼린의 대단히 영적인 표현을 요하는 많은 테크닉을 요구하고 있다-예를 들어, E장조 파르티타의 분출하는 프렐루드에서의 흥겨운 바리오라게(bariolage) ; 그리고 d단조 파르트티타는 반복되는 베이스위에 축조된, 기본적으로 느린 춤곡인 샤콘느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것은 아마도 바흐에 의해 작곡된 단일 악장중에서 최고일 것이다. 여기서 조그마한 바이얼린 한대를 사용하여, 바흐는 음향에서 그의 가장 놀라운 조형중 하나를 투사해내고 있다.
19세기는 진정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못했는데, 이 소나타와 파르티타에 대해 피아노 파트를 부가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졌다. 유일하게 바이얼리니스트 요제프 요하임의 출현에 와서야 이 작품들의 드넓은 가능성이 파악되었다; 당시까지 문제는 바이얼린과 활의 점차적인 진화에 있었다. 바흐는 둥근 스틱을 갖는 활을 사용하였고 그의 바이얼린은 더 평평하고 더 얇은 브릿지에 더욱 낮은 장력의 현이 걸려져 있었고 바이얼린의 넥이 더욱 짧고 덜 각이 졌기때문이다. 큰 볼륨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대다수의 바이얼린들은 더 높은 장력을 취하도록 조정되었다. 활도 더욱 강한 텐션을 다시 허용하기 위해 오목한 스틱을 사용하도록 진화되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바흐의 코드를 연주하기 어렵게 만들었는데, 20세기의 대다수의 바이얼리니스트들은 바흐의 요구와 그들 스스로의 수행능력과의 사이에서 절충을 시도하게 된다. 베가보우같은 일탈현상도 있었다. 이 고안물에 의하면 심지어 현대 바이얼린으로도 연주자는 화음의 모든 음표를 연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음악운동이 이루어지기까지, 바이얼린으로 바흐를 연주하는 것은 일종의 투쟁이었다. 비록 많은 수의 "고악기연주자들"이 최근 소나타와 파르티타에 태클을 걸었더라도, 그들의 최대의 노력은 뛰어난 "절충적인 연주자들"을 지금까지 무색케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헤아릴 수 없는 음악적 역설중의 하나다.
후자가운데 나탄 밀스타인(1904~1992)은 영애로운 위치에 있다. 그는 바흐에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해석에서 보인 놀라운 것인 스타일과 취향상의 영감을 가져왔다. 게다가 그는 테크닉에 있어서의 능숙함과 유연함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다. 놀라운 것은 밀스타인이 바흐가 제대로 평가받지못한 러시안 브르조아라는 환경에서 나타난 점이다. 오데사의 표트르 스톨랴르스키와 세인트 페테르스부르크의 레오폴드 아우어의 밑에서 그는 사실상 바흐를 연주하지 않았으며, 그 스타일을 이해하도록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결론적으로 막스 레거의 경이로운 바이얼린 솔로 작품을 연주하면서 바흐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개발할 수 있었다. 그의 바흐 스타일은 현대 독일 지성의 프리즘을 통하여 보여진 것이었다. 1920년대 중반 한차례 서방세계에 왔을 때 그는 동료 연주자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을 신속히 흡수하여 받아들였다. 전전의 레코딩은 1930년대 말경 그는 이미 바흐에서 비할 데 없는 연주자였다. 그는 뛰어난 바이얼린 작가로서 파가니니를 따라 바흐를 존경하게 되었다.-두명의 작곡가를 퀄리티의 관점에서 동일하게 평가한 것은 아니다-그는 최고로 선호하는 음악으로 샤콘느를 거명하였고 종종 스스로 그곡을 프로그램에 넣기도 하였다.
그는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50년대에도 녹음하였지만 DG와 함께한 이 두번째 레코딩에서 음악에 있어 마지막 말을 했다고 느꼈다. 밀스타인의 바흐는 안정적인 리듬감에 기반하고 있다-빠른 악장에서의 중요성 만큼이나 느린 악장에서도 중요하다. 무곡의 악장에 진정한 무곡적인 면이 살려지고 있지만, 그는 귀족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밀스타인의 톤은 위대한 아름다움에 불구하고 비브라토의 과용으로 인한 그 자체의 것에 주위를 환기시키는 않는다. 감상자의 주의는 항상 음악적인 라인에 포커스가 잡혀 있다. 왜냐하면 연주자의 선율과 레가토에 대한 느낌이 너무나 강하여 그의 톤은 아주 잘 집중되기 때문이다. 장대한 푸가나 샤콘느가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그 감흥과 더불어 결코 정지되지 않을 포괄적인 지적 장악으로 신속하게 연주되어진다. 그 같은 지적 장악력은 바흐의 대위법이 완전히 실현되도록 보장한다. 더욱 조용하고 더욱 내적인 순간은 낭만적인 랄렌탄디(rallentandi-점차적으로 속도를 줄이는 것)에 의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톤의 점층과 볼륨과 음악라인의 긴장에 의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해석은 위대한 배우의 독백의 크기를 가진다는 것이다: 활과 1716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외 어떤 버팀목도 없이, 밀스타인은 무대를 휘어잡을 수 있는 완벽한 신념으로 청중앞에 나온다. 그리고 그는 정제와 고양된 이상을 가진 음악가이기 때문에, 기쁨과 환희의 분출이 동일하게 특징지워진 것과 함께하면서 바흐 음악에 살아야 하는 영적인 소임을 제시하고 있다.(Tully Po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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